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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이름 관리자
ㆍ조회 3880
ㆍ작성일 2016-09-04 (일) 07:17
오사카의 민족교육자 김용해 선생을 기억한다.

[제민일보]오사카의 민족교육자 김용해 선생을 기억한다.

이 사월, 후배가 그림책 하나를 선물로 보내왔다. 단 한편의 시로 엮어진 격있는 풍경들, 우리에게 '은하철도 999'로 잘 알려진 미야자와 겐지의 시 「비에도 지지 않고」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중략)/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모두에게 멍청이라 불리는/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엄혜숙옮김)

아무도 모른다. 거기까지 가봐야 안다. 비바람이 치는지 안 치는지, 결국 포기하지 않아야 희망이다. 사람이니까. 그 측량할 수 없는 민심의 사월 총선이 갓 지나던 꽃바람속에서였다. 그렇게 이 시 속 주인공처럼 잇속 따지지 않고 일관된 삶을 지향했던 한 재일제주인 민족교육자의 먼 부음이 실려 온 것은.  

"차별에 지지 않는 굳센 마음을 가져라" 하던 오사카의 '김 선생님', 향년 89세. 재일 민족교육계의 정신적 거목 김용해 선생이다. 그는 누구인가. 칼칼하던 식민의 시대, 제주시 이호동 가난한 농가의 장자. 자정만 되면 졸지에 4남매의 가장이 된 어머니의 한숨소리를 들어야 했다. 끝내 열일곱에 군대환을 탔다. 처음 기착한 곳은 오사카의 신문사. 활판공에다 교정 보는 일. 그때 고향 선배가 불렀다. 자기가 근무하는 소학교에서 같이 일하자고. 교원 인생의 시작이었다. 1950년에 개설된 오사카 시립 키타츠루하시(北鶴橋)초등학교. 1948년 조선인학교 폐쇄령에 들불처럼 저항해 일어난 4·24한신교육투쟁, 그 결과물로 방과후 우리말을 가르칠 수 있도록 개설된 민족학급의 하나였다. 

방과 후, 강당에서 420명의 아동을 김용해 혼자서 담당했다. 일본인 교원은 "교재로 쓸 용지 하나도 조선인에게 줄 건 없다"했다. 스토브의 석탄은 물론 급여도 일본 교원의 약 3분의1.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런 교사에게 돈이 없던 학부모들은 종이와 연필, 분필을 조달했다. 1951년부터 1987년까지 거기서 36년 외길. 그를 거친 수료생은 1만1500명에 이른다한다.

그의 필생의 완고한 의지는 재일 조선인 아동을 조선 사람으로 자랑스럽게 살도록 해야 한다며 본명쓰기 운동을 벌인 것. 그랬다. "우리 자신의 자각과 긍지없인 본명 쓸 용기가 안 생긴다" 그는 퇴직 후에도 민단 오사카부 본부 문교부에 근무하며 교육위원회와 행정교섭의 길을 추진하는 등 쉬지 않았다. 재일 사회는 그가 일본 공립학교에서 본명 원칙을 호소한 것, 민족학급의 제도적 장치를 실현한 것 등을 큰 공으로 친다. 일본에서 출간된 「김 선생님-제주도를 사랑하여 민족교육으로 산 재일 1세」도 그러한 그의 삶을 기록하자며 뜻을 함께한 이들이 주축이됐다. 

기억한다. 4년 전 제주에서 만났을 때다. 한 길을 걸어온 자의 견고함이 느껴졌다. 고향의 4·3으로 희생된 이들을 위해 오사카의 친족들이 모여 영혼을 위안시키는 추도회라도 열자며 친목회를 만들었다. 말년엔 그렇게 자신이 전생을 걸쳐 모은 귀중한 민족교육 자료를 제주대에 기증했다. 우리에겐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바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어떤 한편에선 '멍충이'가 되기 싫어 잇속 챙기기에 허둥대는 시대, 고 김용해선생, 오래 기억해야 할 그의 전언이 떠오른다. '사람의 아픔을 아는 사람으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거나 돌아가는 것을 손해 봤다고 생각하지 마라'. 내달 16일 오사카에선 그를 기리는 추도회가 열린다는 소식이다. 폭풍에도 지지 않았던 그의 헌신은 이제 역사가 됐다. 김선생님! 봄볕처럼 안온한 영면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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